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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희 영화 주제
다음 소희는 2022년 개봉한 영화로 2014년 장편 영화 '도희야'를 만든 정주리 감독의 작품이다. '다음 소희'로 2022년 판타지아 국제영화제 감독상과, 42회 아미앵 국제 영화제 장편 특별 언급상, 학생 심사의원 특별 언급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로서는 최초로 국제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상영하는 영광을 얻었다. 사회에서 소외받는 힘없는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한 노동계의 착취현실을 고발하는 작품으로,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21세기에 노동력 착취라니 믿을 수 없는 사람도 많겠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힘없고,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취악계층을 상대로 한 이런 만행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더 존중받고 마땅한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상식이 언제쯤 돌아올까,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는 영화였다. 감독은 '다음 소희'를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 영화 '다음 소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다음 소희 스토리 라인
대학에 가지 못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을 해야 하는 소희, 공장에 취직해 힘든 육체노동을 해야 하는 대신, 사무직 직원으로 취직했다며 한껏 신이 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몸이 힘든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혹독했다. 상담 업무는 말이 좋아 상담이지, 사실은 욕받이 업무였다. 고객들은 자신들의 불만을 있는 그대로 여과 없이 쏟아냈고, 매 순간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야 했다.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모두들 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소희는 싱그럽고 아직 어린 여학생이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나온 게 죄는 아닐진대, 어째서 매번 무시당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해지하려는 고객을 막지 못하면 퇴근을 하지 못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콜센터의 업무는 해지하려는 고객을 계속 뺑뺑이를 돌려 결국 해지를 막는, 이른바 '방어'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고객 입장에서는 해지를 하고 싶은데 계속 해지를 막는 상담을 하니, 화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쪽이 더 절박하다. 해지를 막지 못하면 실적에 구멍이 생기니 말이다. 이런 상황을 잘 모르는 어른들은 사회생활은 다 그렇게 녹녹지 않은 것이라 말하고, 소희는 하루하루를 술로 버티다 마음마저 병들어 간다. 그러던 와중에 그나마 자신들을 챙겨주던 팀장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한 사람이 허망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했는데도, 진실을 알려는 사람은 없고, 본사는 그 죽음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기 바쁘다. 결국 지금을 버티고 버텨 팀장이 되어도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 것이었다. 소희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영화 속에서 소희의 이야기는 '여고생의 단순 자살 사건'으로 끝날 뻔 한 기록을 형사 유진이 이상하게 여기면서 추적을 하는 과정으로 기록된다. 소희의 이야기를 소희가 해줄 수 없는 상황이니, 누군가가 파헤쳐 주지 않으면 묻히게 되는 상황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힘이 없다.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꽤 많이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많이 불편해야 한다.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소희'들이 겪었을 아픔을 조금이나 느낄 수 있다면 말이다.
감상평
다음 소희는 사실 지금도 우리 사회에 무수히 존재할 것이다. 그들은 때로 자신의 죽음으로 세상에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지만 마지막 메시지는 시간이 지나면 묻혀 버리고 만다. 감독은 누군가 그 목소리를 지치지 않고, 점점 더 크게 내줄 수는 없을까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사회적 먹이사슬의 그 어디 즈음에 놓여 있다. 대부분이 그러할 것이다. 소득 수준, 지식수준, 학력 수준이 사람의 지위 고하를 구분하는 기준이 아닐진대,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사회가 정해 놓은 노동법 자체도 완벽하지 않지만, 그나마 이것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는 시도조차도 이뤄지지 않는 곳이 많다. 비현실적인 노동법이 그 이유일 수도 있고, 다른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사회적 취약계층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 원인 일 수도 있다. "힘든 일을 하는 것도 서러운데, 힘든 일을 한다고 무시당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노동의 대가가 그 노동의 강도에 비례해야 하는데, '노동의 강도'에 대한 기준이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일을 기피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우리들 중 누구도 '다음 소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금의 내가 아니더라도, 나의 가족 중 누구라도 '다음 소희'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끔찍한 일이다. 나만 아니면 되라는 생각을 버리고, 사회적 불안전함을 함께, 고쳐나가야 하지 않을까, 소희와 같은 사람들을 본다면, 한 번쯤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줄 수 있을까, 세상의 어른으로써 생각이 많아지는 영화 '다음 소희'이다.